얼마 있다가 어디서 나온 사람인지 검정 두루마기에 흰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눌러 동이고
목출 모자로 얼굴을 깊이 가린 남자 하나가 큰 길 편에서 날랜 걸음으로 골 목 안으로 들어서며 이상하게 번쩍거리는 눈으로 좌우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가 한치각이 쓰러져 있는 그 앞에서 깜짝 놀라며 걸음을 멈추고 한참 물끄 러미 들여다본다.
“여보시오, 술이 취했소?” 하며 그 이상한 행인은 한치각의 몸에 손을 대어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나 한치각은 죽은 사람 같이 아무 반향이 없었 다. 이상한 행인은 분망하게 시선을 사방으로 던져 사람의 기척을 살피다가 번개 같이 손을 넣어 한치각의 몸을 뒤지고 있다. 마침 이때 곡선으로 꺾인 실골목 안에서는 쿨럭쿨럭하는 기침 소리가 나며 사람의 자취가 들리었다.
한치각의 몸에 손질을 하고 있는 이상한 행인은 급히 몸을 빼서 골목 밖으 로 달아났다. 그 기침 소리의 주인은 강진사였다. 강진사는 조석을 변변히 끊이지 못하고 어린 자식들과 굶주리고 들어앉았다가 그날 밤은 권농동 사 는 어느 친구가 자기의 친기(親忌)날이라고 일부러 사람을 보내어 청한 까 닭에 그 집에서 오래간만에 제삿밥에 배가 부르고 술이 얼근히 취해서 광희 정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강진사는 돈값어치라고는 몸에 잡히는 것도 없으려니와 솜이 비죽비죽 터져 나오게 된 두루마기에 떨어진 고무신 짝을 끌고 지내는 형편이라 밤이 깊었으나 별로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이 태연하게 골목을 돌아 나오는 길이다. 강진사는 골목을 꺾어서 길옆에 시커 먼 무슨 물체가 넘어져 있는 것이 눈에 선뜻 띄자 걸음을 멈칫하고 그 물체 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85회 의외의 구호
강진사는 한편으로는 무서운 생각이 나서 오던 길로 돌아서며 그 윗 골목 으로 빠져나가려 하였으나 달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사람 같기도 해서 혹시 술에 취한 사람이 쓰러진 것이나 아닌가하고 몸을 다시 돌려서 서먹서 먹한 걸음으로 가까이 들어왔다. 쓰러진 것은 과연 사람이요 달빛이 반사를 받아서 번쩍거리는 털외투가 눈에 익어서 바짝 달려들며 그 얼굴을 들여다 보는 순간에 강진사는 깜짝 놀라며 몸은 소스라쳤다.
쓰러져 있는 사람은 과연 해룡피 외투를 입은 한치각이었다. 강진사의 머 릿속에는 수월 전에 참혹히 거절을 당한 그 감정은 어디로 사라지고 다만 한치각에 대한 불 같은 우정이 치밀어 올라왔다. 강진사는 그 순간에 다른 생각을 용납할 여지가 없이 한치각의 몸에 두 손을 내며 안아 일으키며 “여보게, 참봉, 이게 웬일인가? 글쎄 이 추운 밤에 여기 쓰러져 있다니?
술에 취했나? 정신을 좀 차리게. 크, 큰일날 뻔했네” 하며 정신을 잃은 한 치각을 일으켰다.
한치각은 거진 한 시간 동안이나 정신없이 혼도하였다가 강진사가 일으키 는 바람에 정신이 깨었는지 눈을 번쩍 뜨며 “으─, 누구냐! 이놈들 사람을 함부로 때려? 아아, 죽겠다” 하며 한치각은 얼빠진 사람처럼 두 손을 내두 르며 헛소리를 한다. 강진사는 어떤 영문인지 몰라서 “이 사람 이게 웬일 인가? 때리더니 누가 때렸단 말인가? 어서 정신을 차리게. 날세 나일세 강 이야, 강현필일세.” 강진사는 한치각을 뒤로 안은 채 몸을 뒤로 흔들어 정 신을 일깨운다.
“응응? 강이라니? 강이 누구야?” 하며 한치각은 강진사의 얼굴을 물끄러 미 쳐다본다. 한치각은 청년 한사람에게 뒷통수를 몹시 맞아 가벼운 뇌진탕 을 일으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강진사의 따뜻한 보호에 차차 정신이 돌 아오게 되었다.
“나야, 나를 잊었나? 강현필일세. 대관절 이게 웬 까닭인가?”
강진사는 한치각의 손을 잡고 다시 앞으로 마주 앉았다. 한치각은 점점 정 신이 나는 듯이
“응, 강인가? 자네 여긴 웬일인가? 나를 때리던 놈은 벌써 다 어디로 도 망을 했나?”
강진사는 한치각의 손을 잡고 다시 앞으로 마주 앉았다. 한치각은 점점 정 신이 나는 듯이
“응, 강인가? 자네 여긴 웬일인가? 나를 때리던 놈은 벌써 다 어디로 도 망을 했나?”
한치각은 무시무시한 꿈에서 깬 사람 같이 힘없는 눈을 두리번거리며 사방 을 둘러본다.
“대관절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요 뒷골목에 있는 어느 친구 집에서 놀 다가 지금 막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세.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네. 그래, 어 떤 놈들이 이렇게 때렸단 말인가? 어디 상한 데나 없나?” 하며 강진사는 한치각의 사지를 주무른다.
“나도 어쩐 일인지 모르겠네. 술 취한 학생 같은 놈들이 별안간에 골목 안으로 달려들더니 길을 막고 시비를 걸다가 함부로 덤벼서 때리니 이 세상 에 경찰도 없나. 아이고 가슴이 결리네. 좀 붙잡아 주게. 일어나겠네.” 한 치각은 강진사에게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많이 다친 걸세그려. 저래서야 걸을 수가 있나? 여기서는 창피도 할뿐더 러 얼른 더운 방에 가서 몸을 풀어야지. 그럼 자넬랑은여기 잠깐서서 기다 리게. 내가 얼른 요 아래 자동차부에 뛰어 내려가서 택시를 불러 옴세” 하 며 강진사는 골목 밖으로 나아간다.
“여보게, 강군. 자동차도 부르려니와 네거리 파출소에 얼른 말해서 그 놈 들을 잡게 하여주게.” 한치각은 평생에 처음 당한지라 아프기도 하려니와 분한 마음이 치밀어서 입술이 떨렸다.
“여보게 파출소에 말을 하면 그 놈들이 이때까지 이 근처에 그대로 있겠 나? 다 달아났지. 경찰서엔 말은 나중에 하고 우선 자동차를 불러 올게 얼 른 집으로 돌아가서 치료를 하도록 하게” 하며 강진사는 달음박질을 치며 골목 밖으로 뛰어 나갔다. 조금 있다가 자동차 소리가 나며 강진사가 자동 차 속에서 뛰어 내려서 한치각을 부축하여 자동차에 태워 보내고 강진사는 동구 안 큰 길에서 광희정 자기 집으로 향하였다.
86회 형사의 출장
한치각은 의외의 봉변을 당하여 추위가 심한 권농동 길가에서 하마터면 참 혹히 동사를 하게 되었던 위태한 생명을 강진사의 따뜻한 보호를 받아서 자 기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치각은 자기 집에 돌아와서 큰 소동을 일으 키었다. 평생에 그런 무시무시한 광경을 당해본 일이 없는 한치각은 집안사 람들을 솔발을 쳐서 일으키어 “양의를 불러 오러라, 한방 의사를 청해 오 너라” 하고 한참 법석을 일으키었다. 그러나 한치각의 부상한 정도는 그다 지 중상은 아니다.
원래 그를 때리던 청년패들은 한치각을 구태여 몹시 해코자하는 어떤 계획 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젊은 혈기에 또 술이 얼근하게 취한 판에 눈에 거 칠게 보이던 해룡피 외투를 입은 한치각이 거만한 태도로 집길 앞에 서성거 리는 것이 밉살스러워서 한 패의 장난 겸하여 철군의 제재를 준 것이니 한 치각의 몸에 큰 상처가 있을 까닭은 없다. 그러나 한치각은 사십이 넘도록 남에게 손찌검이라고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라 그것을 보통 사람 같이 한 때 의 횡액으로 단념하고 마음을 가라앉을 수는 없었다. 한치각은 마치 대가집 장정이 종의 자식에게 뺨이나 얻어맞은 것 같은 모욕을 느끼어 곧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그 청년패들을 잡아달라고 말하려 하였으나 자기 아버지와 그 의 딸 복희가 극력으로 만류하였다.
한승지 생각에는 원래 자기 아들이 형세가 단정치 못한 것을 잘 아는 터이 라 만일 그런 일이 세상에 드러나면 도리어 창피한 일이라고 만류한 것이 다. 그 이튿날 아침에 한치각은 흥분이 차차 가라앉게 되어 자기의 몸 세간 을 조사해 보고 다시 크게 놀랐다. 미국에 갔을 때 삼백 원을 주고 산 금시 계와 현금 팔백 원이 들어 있는 돈 지갑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한치각 은 철군의 제재 외에 물질의 손해도 적지 아니하게 되었다. 자기 아버지와 자기 딸이 만류하는 바람에 그럭저럭 되었던 경찰서의 제출 문제는 결국 실 행할 수밖에 없이 되었다. 방탕한 생활을 하는 그지만은 물질에 대해서는 상상 이상의 애착을 느끼는 한치각은 팔백 원의 현금과 삼백 원짜리 금시계 를 한 때의 손재수로 돌리고 말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자기 집에 발을 뚝 끊었던 강진사가 그 밤중에 어디서 툭튀어 나와서 자기를 안아 일으키며 없던 정이 뚝뚝 덮게 간호를 하던 것이 이상 스럽게 생각이 되어 연통 안의관을 동독하여 ××경찰서에도단계를 제출하 게 되었다. 한치각의 주머니의 든 돈은 뒷돈으로 굴러 들어가든지 한치각의 용도보다는 반드시 금전의 가치를 발휘할 것이나 한치각은 자기 생활의 독 소를 짓는 그 돈 팔백 원이 한없이 아까웠다.
안의관이 나아간 뒤 약 시간 쯤 지나서 방한모에 회색 외투를 입은 키가 후리후리하고 눈방울이 부리부리한 사집 전의 남자가 안의관의 뒤를 따라서 한치각의 집 파란 대문을 들어섰다. 그 남자는 사랑 뜰에 올라서며 명함을 꺼내서 안의관에 전하고 밖에 기다리고 섰다. 안의관은 명함을 한치각의 앞 에 내밀며
“경찰서에 가서 말을 했더니 본인을 만나겠다고 서원이 따라와서 지금 밖 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곧 들어오라고 할까? 하며 안의관은 한치각 의향를 물었다.
한치각은 처네를 덮고 드러누운 채로 이맛살을 찌푸리며
“따라올 것은 무어 있소? 왜 나가 있는 대로 말을 자세히 했으면 고만이 지 더 조사할 것은 뭐람? 자네가 또 말을 분명히 못한 것이지?” 한치각은 형사를 대하는 것이 마음에 좋지 않아서 공연히 죄 없는 안의관에게 꾸지람 비슷학 나무란다.
“말을 다 자세히 했지만 나더러 피해자 본인이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했더 니 그럼 본인을 데리고 오라 하기에 방금 보인은 몸이 불편해서 누웠다고 했더니 그러면 현장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서원이 쫓아 오는 것 을 거절할 수가 있소?” 하며 안의관을 자기를 변명하였다.
한치각은 명함을 든 채로 한참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있다. 어젯밤에 당한 것을 현장 광경대로 이야기 하는 것은 별 관계가 없지만은 형사의 조사가 그렇게 간단할 리는 없을 터이요 이 끝 저 끝을 끌어서 뒤를 캐물을 터이니 만일 대답을 잘못하면 자기의 생활 내면이 폭로가 될 터이니 함부로 대답도 할 수도 없고 오히려 큰 걱정거리를 샀다고 생각하며 마음이 불안해졌다.
87회 도적이 제 발이 저리어
한치각은 할 수 없이 덮었던 처네를 한편으로 밀어치고 형사를 맞아 들였 다. 형사는 방에 들어오자 한치각에게 머리를 약간 숙여서 인사의 뜻을 나 타내고 외투를 벗어 윗목 구석으로 던지며 번쩍거리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어 방안을 살피며 한치각을 대하여 마주 앉았다.
“나는 ××서에서 왔습니다. 원래 도난계 피해자 본인이 경찰서에 출두하 여 제출하는 법이지만은 몸이 불편하다기에 내가 일부러 출장을 하였소이 다. 어젯밤에 피해를 당하시던 현장의 이야기를 자세히 하시지요” 하며 형 사는 날카로운 때때로 한치각은 얼굴을 쳐다본다. 한치각은 형사의 힘있게 쏘이는 그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며
“일부러 이렇게 찾아주시니 미안합니다. 어젯밤에 당한 일은 내 생전에는 처음 당한 봉변이었습니다.” 한치각의 어조는 힘이 빠진 부드러움뿐이었 다.
“그러면 몇 시나 되었던 때인가요? 권농동 뒷골에서 청년 4∼5명이 작당 을 해서 덤볐다지요?”
“네, 아마 두 시는 좀 넘었지요. 내가 막 좁은 골목을 돌아서 큰 길로 나 오려하는데 별안간에 큰 길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나더니 내가 나오려하는 그 골목으로 술이 취한 4∼5인의 청년패가 들어오더니 길을 막고 시비를 하 다가 함부로 덤비어 구타를 하는 통에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하여 그 자리 에 쓰러져 혼절을 했었습니다” 하며 한치각은 그 때의 광경을 자세히 말하 였다.
형사는 한치각의 얼굴을 쳐다보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리며 들고 있다가 “그러면. 그 패들이 댁에 보기에 무엇을 하는 사람들 같이 보이던가요?
옷은 무엇을 입구요?
“네, 옷은 학생복을 입고 검정 외투를 입었는데 연령으로 보면 이십은 다 넘은 듯하고 말씨들이 어느 전문학교를 졸업하게 된 학생들 같았어요.” “네, 그런데 그자들이 덤비어 떠밀 때에 몸에 손을 넣어서 무엇을 꺼내려 하던 형적은 없었나요?”
“자세히 생각은 나지 아니하나 그자들의 주먹을 함부로 내 몸에 들이닥쳤 으나 무엇을 꺼내려 하던 형적은 없었어요.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뒤에 는 어쨌는지 그 전에는 그자들의 손길이 내 몸에 수상하게 닿지는 아니했어 요.”
“네, 그러면 차셨던 시계와 현금은 그 때에 빼앗겼던 것은 아니지요?” “글쎄요, 나를 때리던 자들은 하여튼 불한당이나 도적 같지는 않아봬요.
그저 난폭한 불량학생들 같던 걸요. 그러나 내가 정신을 잃었던 동안에 그 자들이 꺼냈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새로 두 시나 지냈으면 닭이 울 텐데 어디를 다녀오시다 그 골목 을 지나셨던가요? 거기는 요릿집도 없는 데인데.” 형사의 말뜻은 차차 한 치각의 생활 뒷면에 그 날카로운 부리가 닥쳐오기 시작하자 한치각은 대답 이 궁색하게 되어 주저하며
“어, 어느 친구 집에서 놀다 오던 길이었지요.”
“뉘 집이던가요?” 형사는 한치각이 주저하는 눈치를 보고 무엇이나 딴 발견을 한 듯이 채쳐 물었다. 한치각은 바로 밀매음녀의 집에서 놀고 오던 길이라고는 창피해서 말할 수가 없고 말문이 막히어 허둥허둥하며
“저, 저, 전부터 친한 사람인 그 집에서 놀고 오던 길.” 한치각의 어조 는 분명치 못하였다.
형사는 다시 한치각의 얼굴을 쏘아 보며 “그 집 주인의 성명이 무어냐 말 이에요?” 형사의 말은 힘있게 채쳤다.
한치각은 고개를 숙여 형사의 시선을 피하여 얼른 성명을 대려하였으나 꺼 내일 성명이 선뜻 머리에 돌지 아니하여 “그것까지는 조사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하며 용서하라는 것처럼 말하였다.
형사는 무슨 일인지 한치각이 약점을 드러낸 것을 보고 점점 더 급히 추적 한다.
“그 사람 성명을 구태여 비밀로 하실 건 무어 있소? 대관절 못 갈 데를 갔었더란 말이오? 당신이 갔다 온 처소를 자세히 알아야 사건의 단서를 얻 지 않소? 만일 당신이 종내 말을 아니 한다면 나는 직권을 가지고 조사할 필요가 있소” 하며 형사의 태도는 진정인지 거짓인지는 모르나 처음과는 돌변하여 죄인을 다루는 태도가 나타났다.
한치각은 흥분과 공포에 몰리어 얼굴이 핼쓱하여졌다.
88회 은혜를 칼로 갚아
형사의 조사는 한치각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강압하였다. 한치각은 조사를 받는 동안에 형사의 태도가 너무 괘씸하게도 보이고 또 한편으로는 날카로 운 송곳 끝 같이 자기의 어두운 생활이면을 찌르는 형사의 태도가 마음에 공포를 느끼게도 하여 경찰서에 말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한치각은 형사가 직권으로 갔던 곳을 조사하겠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밀매음녀 집에서 놀고 왔다는 것을 바로 토설하였다. 형사는 의외의 흥미가 풀어지 것처럼 “요새 돈냥이나 있는 재산가들은 당신뿐이 아니라 모두 그런 어두운 구석 에나 찾아다니며 풍속을 문란케 하는 것이 한 일이지요. 그럼 최후에 당신 을 보호했다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요?”
“네, 강현필이라는 사람인데 원래부터 알던 사람이었으나 얼마 전부터 내 게 무슨 감정을 가졌는지 별안간에 발을 똑 끊고 아니 다니다가 공교하게 어젯밤에 그 현장에서 만났소이다.”
“몇 살이나 된 사람인가요?”
“나이는 거진 오십이나 되었지요.”
“그는 무얼 하는 사람인가요? 그리고 생활은 넉넉한 사람인가요?”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생활은 말할 수 없이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 에 내가 가끔은 돈 냥이나 주어 살리다시피 하던 터인데 몇 달 전에 염치없 이 또 돈을 달라길래 거절을 했더니 그 후로는 발길을 똑 끊고 아니 오다가 어제 비로소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소이다.”
한치각은 양심이 허락지 아니하는 거짓말을 하여 가장 자기가 강진사를 후 하게 살리던 터인데 인정을 모르고 일시의 감정으로 자기를 배반한 것 같이 강진사를 몰아부쳤다. 한치각은 자기가 인정 없이 냉정한 것은 뉘우치지 않 고 다만 강진사가 자기를 배반하였다는 인간을 멸시하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던 중에 이 기회를 가지고 한 번 복수를 하자는 생각이 치밀었다. 한치각 은 인적이 끊어진 길가에서 사지가 얼어드는 참혹한 동사의 위협을 구호해 준 그 따뜻한 우정을 느끼지 아니하고 양 같이 유순한 강진사에게 독한 칼 날을 던지려 한다. 형사는 한치각의 말에 어떤 힌트를 얻은 듯이
“그러면 강현필이라는 사람은 일종의 무직자이군요. 무얼 먹고 사나요?” “글쎄, 모르지요. 내 집을 배반한 지가 벌써 몇 달 동안이나 되니까 알 수 없어요?”
“글쎄, 모르지요. 내 집을 배반한 지가 벌써 몇 달 동안이나 되니까 알 수 없어요.”
한치각의 말은 점점 형사의 의문 자료를 제공한다.
“네, 그럼 그 사람의 집이 어디오니까? 얼굴은 어떻게 생기구요?” 형사 는 거의 무슨 단서를 얻은 듯이 얼굴에 밝은 빛이 나타난다. 한치각은 강진 사의 키가 크고 얼굴이 멀쑥하다는 모습을 비롯하여 그의 모양을 자세히 말 하였다. 형사는 수첩을 꺼내서 강진사의 주소 성명과 또 분실된 돈지갑, 시 계의 특점을 기록한 다음에
“그러면 현장 이야기는 자세히 알았소이다. 그 외에 현장을 떠나서 최근 에 댁에 무슨 다른 일은 없었나요? 혹 어느 방면으로 돈의 청구를 받았다든 지 할 일은 없습니까?”
형사는 어떠한 사상방면에서 직접 행동이나 한 것은 아닌가해서 또 이렇게 물었다.
“별로 그런 일은 없었으나 아니, 옳지, 이런 일은 있었습니다.” “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수일 전에 리민영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별안간에 돈을 오백 원 기부하 라던 일이 있었지요.” 한치각은 리민영은 구태여 이 사건 중에 끌어넣을 생각은 없지만은 원래부터 자기와 성미가 맞지 않은 사람이요, 또 구태여 사건을 숨길 필요도 없어서 리민영과 수작하던 전말을 대강 말하였다.
“리민영이라니요? 광화문 밖에서 학교를 하는 사람 말이지요?” 형사도 리민영을 짐작하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네, 그 사람이 왔었어요. 마침 수중에 돈이 없어서 그대로 섭섭히 돌려 보냈지만 매우 좋지 않은 기색을 띠고 간 일이 있소이다.”
“네, 그런 일이 있었어요?” 형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만하면 사건의 단서를 얻었다는 것처럼 활기를 띠며 돌아갔다.
89회 청천의 병력 같은
광희정 강진사의 집에서는 어린 딸 용희와 그 아들 준성이가 어제 저녁도 못 얻어먹고 오늘 아침에도 열 시가 넘도록 밥을 지을 가망이 없어 막막하 게 앉았는 저희 어머니를 조르며 밥을 달라고 보채는 중에 강진사가 어젯밤 에 제삿밥을 얻어먹고 온 그 친구 집에서 또 반기(飯器) 상.을 보내었다.
강진사의 마누라는 질화로에 타다 남은 숯 부스러기를 모아서 불을 피우며 두 아이들은 반기 상을 둘러앉아서 실과들을 손에 들고 누르뚱뚱한 얼굴에 만족한 빛을 나타내며 좋아서 입은 벙글벙글한다. 오늘 아침에도 또 어린 것들을 속이어 고픈 배를 참게 할 수밖에 없어서 강진사의 마누라는 눈가에 가벼운 눈물 흔적이 떠돌고 강진사는 서늘한 방 위에서 솜이 삐어져 나오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깨어 둥실둥실 하던 차에 자기 어려운 사정을 짐작 하는 친구의 집에서 반기 상을 보내어 주어 생각지도 아니한 한 끼의 요기 거리가 들어오게 되어 강진사의 집 안에는 이 찰나에 가련한 한 줄기의 환 희가 불러 있을 때이다.
대문 밖에서 낯 서투른 목소리로 “이리 오너라” 하는 소리가 반기 상을 둘러앉은 강진사의 집 방 안에 울렸다. 그 부르는 소리는 목소리가 굵고 몹 시 거세었다.
강진사의 마누라는 깜짝 놀라며 아랫목 이불 속에 있는 강진사를 바라보며 “여보 밖에 누가 왔나 보오” 하며 강진사를 일깨웠다.
전유어를 한 쪽 손에 들고 두 볼에 메어지게 우물거리고 있는 두 아이들은 일시에 들어서 자기 어머니를 바라보며 이상스러운 불안에 싸여있다. 대문 밖에서는 또 이때에 “이리 오너라” 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강진사의 마누라는 “여보 누가 찾아왔소. 누가 와 찾소. 얼른 나가 보 오.” 강진사는 마침 잠이 들려 하다가 얼른 일어나서 대님을 매며 허리띠 를 두르며 분주히 대문 밖으로 나아간다. 강진사가 미처 대문까지 나아가기 전에 검정 외투를 입은 남자가 앞마당으로 썩 들어온다. 강진사는 깜짝 놀 라며 서로 마주쳤다. 들어오던 검정 외투자리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강진사 를 쏘아 보며 “당신이 이 집 주인이오? 당신 성명이 이봉실이 아니오?” 하며 강진사를 턱 막았다. 강진사는 별안간에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눈이 휘둥그런하며 “아니요, 나는 강현필이오. 집을 잘못 찾았나 보오” 하며 검정 외투자리를 쳐다보며 불만의 빛을 나타냈다.
그 사람은 강진사의 입에서 강현필이라는 말이 나오자 “당신이 정녕 강현 필이오?” 하며 강진사를 쳐다보았다. 강진사의 눅진한 성미에도 일종의 모 욕을 느끼는 감정이 일어나서 “그래요, 내가 강현필이예요. 밖에 붙인 문 패도 못 보았소?” 강진사는 얼굴에 노한 기색을 띠며 검정 외투자리를 쳐 다보려 할 즈음에 그 사람은 다른 손으로 번개 같이 강진사의 팔을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나는 ××서에서 왔다. 복상, 얼른 시작하지?” 하며 대문 밖으로 군호를 하였다. 그 소리와 동시에 인바네스 입은 사람, 양복 입은 사람들 사오 인이 앞마당으로 몰려들어 서며 “우리들은 모두 ××서에서 왔다. 너희 집의 가택 수색을 할 터이다” 하며 형사들은 신발을 신은 채 마루 위로 올라섰다. 강진사는 ××서라는 소리에 정신이 아뜩하게 놀라서 우두커니 섰는 동안에 강진사의 굵다란 심줄이 내솟은 손목은 저항할 힘도 없이 한 대 포개지며 포승줄에 얽히었다.
“이게 웬일이에요? 대관절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강진사는 몸이 떨리 며 말이 떨리며 가슴이 울렁거렸다. 방 안에서 제사 반기를 먹던 아이들과 강진사의 마누라는 일시에 놀라서 미닫이를 열고 얼굴이 핼쓱해서 떨고 섰 다. 형사들은 안방으로 마루로 건넌방으로 일시에 손을 나누어서 뒨장질을 친다. 마당에 묶여 섰는 강진사는 정신이 아득한 중에도 까닭을 몰라서 “이게 웬일이에요? 평생에 죄라고는 모르는 사람인데” 하며 형사에게 애 원하는 듯이 묻는다. 형사는 널따란 손길을 쫙 펴가지고 번개 같이 강진사 의 뺨을 얼러친다.
“이놈아, 뻔뻔하게 무슨 잔소리냐? 경찰서 가면 다 안다” 하며 두 눈을 부라리며 섰다.
방 안에서 마루로 쫒겨나온 두 어린애는 강진사를 때리는 바람에 “아버 지!” 하고 소리를 치며 울고 있다. 강진사 마누라는 “아이고 저를 어째” 하며 마당으로 뛰어 내려왔다. 강진사의 집에는 한 때의 밥을 만나서 주림 을 채우려 하던 즈음에 때 아닌 벽력이 떨어졌다.
90회 무서운 경찰서
강진사는 두 손을 묶인 채로 팔자에 없는 자동차를 타고 ××경찰서로 잡 혀 갔다. 눈이 벌개서 강진사 집을 수색하던 형사대는 그 결과 의외의 실망 을 하게 되었다. 방에 놓인 것이라고는 헌 농짝 장식이 떨어진 부담 상자들 의 우중충한 세간뿐이요, 결국 형사대의 손에 잡힌 것은 오래 전에 당국에 서 압수한 낙길이 된 조선 역사책을 두어 권 찾아내었을 뿐이다. 강진사 집 에는 강진사가 있기로 살림을 보태일 아무 활동은 없지만은 쌀이 없어도 강 진사를 쳐다보고 어린 것이 아프다 해도 강진사만 바라보고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이 경찰서로 잡혀간 뒤에는 넋을 잃은 세 식구는 배고픈 것보다 가장의 운명이 걱정이 되어 차돌 같이 차디찬 강진사의 가정에는 다시 시꺼먼 공기 가 둘러 있다. 강진사의 마누라는 강진사가 잡혀 가는 뒤를 따라서 큰길까 지 쫓아 나왔으나 큰길 모퉁이에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는 강진사를 집어 삼 키고 짐승같이 달아나는 바람에 다시는 쫓아갈 수도 없고 부인(不人) 밭머 리에서 그 자동차의 형적이 뵈지 아니하도록 서서 행주치마자락으로 눈을 씻으며 얼마동안 섰다가 할 수 없이 집으로 들어왔다. 준성이와 용희는 좌 우에서 치맛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며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로 갔어?” 하며 울고 있는 가련한 형상을 보매 강 진사 마누라는 앞길이 캄캄하였다. 대관절 무슨 까닭에 그렇게 무시 무시한 시위를 하며 집 안까지 뒨장질을 치고 잡아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기 남편의 성미와 행동을 잘 아는 그에게는 도저히 상상으로는 짐작할 수 가 없었다. 마음이 유순하고 성미가 눅은 사람이 남하고 시비를 할 리도 없 고 오십이 되도록 돈 한 푼 주변성이 없던 사람이 별안간에 남을 속이어 재 산을 탐낼 위인도 아닌데 경찰서에서 육칠 인 씩이나 와서 큰 죄인을 잡아 가는 듯이 시위를 하는 것이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시체의 사리를 아는 사람 같으면 딴 길을 뚫어서라도 경찰서에 그 내용을 탐문해 볼 수도 있겠 지마는 순연한 구식 가정의 여인이라 그러한 주변도 없어서 한참 동안 떨리 는 가슴을 움켜지고 맥맥하게 섰다가 두 어린 것을 달래서 집을 보게 하고 강진사 마누라는 살이 부러진 목양산을 꺼내 짚고 ××경찰서를 찾아 갔다.
평생에 처음 가는 곳이라 그에게는 어떤 곳이 경찰서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서 겨우 ××서 앞에까지 왔다. 돌층계 위네 시뻘 건 벽돌집이 높다랗게 서 있는 그 대문 앞에 젊은 순사가 칼자루를 움켜쥐 고 장승 같이 서 있다. 강진사 마누라는 쳐다보기만 해도 몸이 떨릴 만치 무시무시하였다. 층대에는 올라간 용기가 나지 않아서 턱 아래에 세운 게시 판 앞에서 서성거리고 섰다. 나오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모두 양복을 입은 사람뿐이요 조선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아니하여 말을 붙일 수도 없었다.
얼마 동안 서성거리고 있는 중에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그 대문 안에 서 나오는 것을 보고 강진사의 마누라는 “여보세요. 여기 잡혀온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해요?” 하며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빛으로 물었다. 무심히 나 오던 그 사람은 별안간에 걸음을 주춤하며 “글쎄요, 나도 자세히 모르겠는 데요. 저 위에 있는 순사더러 물어 보시지요” 하며 지나갔다.
강진사의 마누라는 마음을 다스려 먹고 층층대를 한 걸음 두 걸음 올라 디 디며 파수 보는 순사의 눈치를 보고 올라왔다. 대문 앞에 와서는 또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아서 기웃기웃하며 그 안을 들여다보는 중에 별안간 “뭐요?
무슨 일이 있소?” 하며 파수 선 사람은 소리를 쳤다. 강진사 마누라는 깜 짝 놀라며 “여기 찾아볼 사람이 있어서 왔어요.”
“누구? 누구 찾어?”
“네, 강현필이라는 사람이에요” 하며 강진사 마누라는 자기 남편을 찾 아볼 구멍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누구 찾나? 모호는 사라무 마루야?” 순사는 서투른 조선말로 다시 묻는 다.
“저, 저, 조금 전에 아기 잡혀온 사람이요”
“모우? 자부어온 사라무? 안도이우. 조리 갓소” 하며 순사는 눈을 똑바 로 ?뜨고 손짓을 하며 강진사 마누라를 내리몰았다.
강진사 마누라는 할 수 없이 다시 쫓겨 층대 아래로 내려 왔다. 층대 아래 에는 어디서 몰아오는지 자동차 한 대가 질풍 같이 들이닥치며 검정 양복 위에 검정 사무복을 입은 사십 가량 되어 보이는 사람이 손목에 수갑을 채 우고 여러 사람들에게 애워싸여서 자동차에서 내리더니 덜미를 잡혀서 층대 를 올라간다. 강진사 마누라는 또 마음이 선뜻하여 한편으로 피해섰다.
91회 지옥 같은 지하실
한치각의 머리에 가한 여러 진(眞) 청년들의 철권은 썩어 들어가는 이사회 의 국부수술을 의미한 것이었으나 그 파동은 도리어 반대의 방면으로 진행 하게 되었다. 한치각이 분실한 현금 팔백 원과 삼백 원짜리 금시계가 의문 의 열쇠를 쥐고 인적이 끊어진 권농동 골목에서 그 형적을 감추게 되어 의 문을 싸고 도는 경찰의 수사는 한치각을 중심으로 하고 거미줄 같이 늘어놓 였다. ××경찰서에서 광희정 강진사의 집을 수색하는 동시에 형사의 한 반 은 또 광화문 밖에 있는 ××학교를 습격하여 리민영은 원래부터 사상이 불 온하다는 혐의를 받아 소관 ××경찰서에서는 주의 인물로 경계를 하던 차 에 사건이 일어나기 수일 전에 한치각의 집에 와서 오백 원 기부를 청한 사 실이었기 때문에 경찰서에서는 그러면 어떠한 직접 행동이나 있지 아니한가 하여 리민영을 체포한 것이다. ××서의 활동은 두 자동차에 나누어 강진사 집과 리민영 집을 동시에 습격하였으나 거리가 가까운 강진사가 먼저 체포 되어 오고 그 다음에 강진사 마누라가 경찰서 문안에서 어른대고 있을 때에 돌아 들어오던 그 죄인이 리민영이었다. 강진사와 리민영의 두 사람은 별안 간에 형사의 습격을 당하여 ××서에 잡혀 왔으나 어떠한 사건이 자기들을 그렇게 옭아 넣었는지 그 내용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리민영은 ××학 교에서 마침 교실에 들어가서 어린 학생들에게 학과를 가르치고 있는 중에 번개 같이 달려드는 형사들에게 참혹하게 두 손목을 묶여 끌려 나오는 것을 보고 어린 학생들은 놀라며 울고 쫓아 나왔다. 리민영이 체포되던 찰나의 광경은 비극 중에도 가장 심각한 비극의 한 장면이었다. 난로불도 못 켜고 달달 떨고 앉았는 어린 학생에게 추위를 참게 하느라고 여러 가지 위로의 말을 하여가며 모지라진 분필 도막을 손에 쥐고 눈물이 맺히는 교수를 하던 중이었다. 별안간에 교실의 좌우 문이 일시에 열리더니 우르르 몰려들어오 던 형사들은 인자한 아버지 같이 쳐다보고 있는 교장 선생님을 교단에서 잡 어 내려서 덜미를 치며 끌고 나가는 그 찰나에 교실에 가득 하던 어린 학생 들은 몸을 소스라쳐 놀라며 울고 부르짖었다.
두 손을 묶인 채 고개를 숙이며 힘없이 운동장을 걸어 나가며 벌떼같이 좌 우를 둘러싸며 쫓아 나오는 학생에게 “나는 아무 죄도 없으니 학생들은 놀 라지 말고 공부나 잘 하고 있으렴” 하며 젖먹이 어린애를 떼어 놓고 가는 어머니처럼 학생들을 자주 돌아보며 잡혀가던 광경은 보는 사람에게 눈물을 자아냈다.
강진사는 잡혀오자 허리에 포승을 물린 채로 지하실로 들어갔다. 바윗돌 같은 시멘트 천장은 머리를 내려 누를 듯이 무겁게 달려 있고 핏빛 같이 시 뻘건 벽돌담은 철통 같이 둘러 있다. 강진사는 다시 머리가 선뜻하여 마음 이 울렁거리고 앞이 캄캄하여졌다. 오십이 되도록 그런 무서운 곳을 못 본 강진사는 몸이 떨리었다. 두붓모 같은 철창 같은 곳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광선은 겨우 정면에 있는 물체를 나타낼 뿐이요, 우중충한 쉰내에 둔탁한 공기가 시큼한 흙냄새를 흔들어 코에 스친다. 저편 구석에서는 같은 운명에 매달린 사람이 흙바닥에 꿇어앉아서 무서운 문초를 받고 있다. 강진사는 형 사가 시키는 대로 흙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형사는 손바닥에 쥐었던 포승 끝을 홱 채치며
“이놈아, 꿇어앉아! 남이 앉은 것도 못 보니?” 하며 제일착으로 강진사 의 혼을 빼앗았다. 강진사는 별안간에 무슨 영문을 몰라서 눈을 두리번거리 며 두 무릎을 흙에 대이고 꿇어앉았다. 조금 있다가 손에 회초리를 들고 새 카맣게 웃수염을 기른 복장한 순사 부장이 층층 소리를 내며 지하실로 내려 왔다. 강진사는 또 몸이 떨리었다. 복장을 입은 순사는 구석에 놓였던 의자 를 끌어 놓고 앉으며
“네가 강현필이냐?” 하며 강진사를 내려다본다. 강진사는 얼떨결에 “네” 하는 소리가 나왔다.
“네 집이 어디야?”
“광희정.” 강진사는 말이 떨려서 말끝을 마무를 수가 없었다.
“이놈아, 말을 똑똑히 해. 광희정 몇 번지냐?” 물으며 순사 부장은 발을 탁 굴렀다. 강진사는 또 깜짝 놀랐다.
92회 무죄한 두 사람
강진사와 리민영은 ××경찰서에서 제 일차의 엄혹한 취조를 받았다. 그 중에 강진사는 가장 수치스러운 절도의 혐의로 취조를 받았다. 무쇠 궤짝 같은 지하실에서 서너 시간이나 무시무시한 광경을 겪었다. 모른다면 때리 고. 아니라면 쥐어박혀서 강진사의 귀뺨은 연감 같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 나 한치각을 현장에서 보호한 것은 사실이나 그 이외의 사건은 전연히 모르 는 강진사는 무어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팔백원의 현금과 삼백 원짜리 시계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경찰서에서 비로소 들은 말이요 강진사에게는 생 각지도 아니한 난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에 얽혀들 줄을 알았다면 우정도 아 무것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대로 내버려둘 것을 공연한 일을 했다고 강진 사는 뉘우쳤다. 강진사는 해가 거의 질 때 지하실에서 유치장으로 또 끌려 갔다.
“네가 종시 토설을 아니하면 얼마 동안이라도 경찰서에 가둬두고 날마다 무서운 광경을 당할 터이니 다시 생각을 하고 내일은 정말을 해라.” 강진 사는 두 눈을 부라리며 취조하던 순사 부장의 이러한 무서운 말을 듣고 물 속에 빠졌다가 다시 불 길 속으로 들어가는 공포를 느끼며 유치장으로 들어 갔다. 리민영도 별실에서 엄혹한 취조를 받았다. 사실은 물론 한치각에 관 한 것이나 취조하는 방면이 강진사와는 달랐다. 그는 한치각에게 오백 원을 강청한 위협죄와 사상 방면에 대한 어떠한 비밀결사의 문초를 받았다. 리민 영에게는 전연히 모르는 사실이었다. 강진사와 리민영을 취조한 결과 별로 발견한 단서는 없었다. 경찰서에서도 당초부터 확실한 증거가 있어서 두 사 사람을 검색한 것이 아니요, 한치각의 대답하던 말눈치와 형사가 상례로 활 동하던 제 육감이 강진사와 리민영을 그와 같이 검색하게 된 것이나 처음 취조에 아무 단서를 발견치 모하게 되어 취조하던 주임들은 다시 머릿속에 의문이 떠돌았다. 그러나 한 번 취조에 두 사람을 무관계자라고 방송할 이 는 없었다. 강진사와 리민영은 어두운 유치장에서 앞길이 캄캄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아무리 민활한 경찰서의 활동이라 할지라도 사건의 진상은 용이히 탐정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은 인적이 끊어진 좁 은 골목에서 마치 여름 하늘에서 별똥이 바다 위로 떨어지듯이 아무 흔적도 없이 지나간 사실이다. 귀신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상상키 어려운 비밀이다.
그 날 저녁에 경성 안의 여러 신문은 일제히 한치각의 봉변한 기사를 보도 하였다. 어떤 신문에는 주먹 같은 큰 활자로 ‘한 부호의 아들을 습격’했 다는 제목을 첫 머리에 쓰고 한치각이 철권의 제재를 받던 그 현장의 사실 을 치밀하게 목도한 것 같이 보도한 것 같이 보도한 신문도 있고 또 어떤 신문에는 ‘모 학교 교장의 부호 협박’이라는 제목 밑에 리민영을 진범처 럼 만들어서 어떠한 비밀 결사원들이 한치각을 습격한 것 같이 보도한 신문 도 있어 한치각의 습격사건이 그 날 여러 신문의 사회면을 번화하게 하였 다. 이와 같이 여러 신문이 모두 신문기자들에게 육감에서 나온 기사를 보 도하고 있는 중에 오직 ××신문만은 거의 진상에 가까운 기사를 보도하였 다. ‘방탕아의 말로’라는 제목 밑에 한치각의 색마성을 자세히 기재하고 그 끝에는 ‘사회가 제재한 통쾌한 철권’이라고 보도하였다. 여러 신문에 기재된 한치각의 사건은 ××신문이 가장 그 진상에 가까운 보도를 하였다.
그러나 그 ××신문사에서만 특별히 현장의 광경을 본 것은 아니지마는 한 치각의 평일의 행동을 세밀히 조사한 결과가 이와 같은 진상을 보도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 신문을 들여다보지 않던 한치각은 그 날에 비로소 신문을 손에 들게 되었다. 몸에 큰 중상은 없지마는 사지가 늘씬해서 자리 속에 누 웠던 한치각은 상노 만돌을 동독하려 여서 신문을 모아놓고 자기의 기사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안으로 통한 복도 문이 빠끔히 열리며 자기 딸 복 희가 들어온다. 복희의 손에는 ××신문을 들고 있다. 사랑에는 한치각이 며칠 동안 정양을 하게 되어 모이던 병정들도 다 돌아가고 한치각 한 사람 만 아랫목에 누워 있다. 복희는 한치각의 누운 앞으로 앉으며
“아버지, 어디가 아프시지는 않아요?”
“글쎄.”
“그때, 퍽 놀라셨지요?” 하며 한치각을 들여다보는 두 눈에는 눈물이 어 려 있다.
93회 순진한 마음으로
복희는 그날 석간신문들이 자기 아버지의 기사를 일제히 보도한 중에 ×× 신문이 가장 혹독한 붓을 들어 자기 아버지의 방탕한 행동을 논파하며 한 점의 동정이 없이 써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떠돌았다.
그러나 보도된 기사는 자기 아버지가 사회에 끼친 해독을 그대로 폭로한 것 이었다. 비록 자기 아버지의 일이지마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신문 을 보는 중에 복희는 가슴이 막히는 슬픔을 느끼었다. 재산으로나 또 처지 로나 자기 아버지는 이 사회에서 동정을 받을 만한 지휘에 있으면서도 항상 방탕한 생활에 빠져서 그런 원통한 언론의 제재를 받게 되니 참 애닯은 일 이라고 생각하였다 자기 아버지를 아무리 두둔하여 생각하더라도 ××신문 에 보도된 기사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밤을 낮으로 이어서 부랑한 구멍으 로 구덩이로 돌아다니던 자기 아버지다. 이번에 당한 신문의 논박에 눈을 떠서 정당한 생활로 돌아왔으면 하는 희망이 복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오늘은 그것을 기회로 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애원을 할 생각으로 사랑에 손 이 없는 틈을 타서 나온 것이다. 황숙자의 사진을 발견한 뒤로는 복희는 자 기 아버지의 행동이 더욱 마음에 키어서 아무도 모르는 가슴을 태우고 있던 터이다. 여러 신문을 다 읽고는 한치각은 얼굴에 약간 흥분된 빛이 나타나 며
“망할 자식들, 신문에 낼 것도 없나? 이런 기사로 반(半)면이나 떠들어 댈 것이 무어야?" 하며 불안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복희는 이 기회를 잃지 말자는 듯이 “오늘 신문에는 맨 아버지께서 봉변 한 기사뿐이에요. 어떻게 그렇게들 소문을 빨리 들어서 누가 그런 걸 알려 주길래 신문에 내지요?” 하며 한치각의 얼굴을 곁눈으로 보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남의 험담은 빨리 듣는단다. 망할 자식들!” 하며 한 치각은 불평이 변하여 신문의 공격으로 나왔다.
“그런데 여러 신문 중에 ××신문에는 아주 고약하게 났어요. 아버지를 여지없이 공격하지 않았어요?” 하며 복희는 차마 연구하여 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러게 말이다. ××신문은 소위 민중 신문이니 무엇이니 하고 남의 약 점을 들춰내는 신문이란다. 그러 신문은 당연히 제재를 해야지. ××신문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겠다” 하는 한치각은 흥분된 기색이 다시 얼굴에 나타났다.
“고소는 어떻게 하는 것이야요?” 복희는 처음 듣는 듯이 의미를 묻는다.
“여학교를 졸업한 것이 입때 그것도 모르니?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웠단 말이냐?”
“그런 법률에 대한 것은 아직 배우지 않았어요.”
“쉽게 말하면 신문사를 걸어서 재판을 하는 것이란다.”
“그럼 어떻게 돼요?”
“재판에 지면 신문사는 벌금을 물게 되는 것이지.”
“그럼 보도한 기사가 잘못 되었으면 신문사에서 지구요”
“그렇지 신문사에서 지지.”
“만일 신문에 내인 기사가 정말이라면 어떻게 돼요?”
복희는 상식으로도 짐작할 평범한 일이지만 자기 아버지가 과연 어떠한 생 각을 가지고 있나 하고 이렇게 물었다.
한치각은 양미간에 주름을 잡히며 “그거야 할 수 없지. ××신문에 난 기 사가 너는 모두가 정말로 아니?” 하며 한치각은 화증을 버럭 내었다.
복희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이 없다.
“그놈들에게 돈의 자유를 주어만 봐라. 그 놈들은 계집을 아니할 터이 냐?”
한치각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던지며 벽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복희는 자기 아버지가 종시 뉘우치는 마음이 없이 썩은 자만심을 가지고 사회에 대항코자 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애닯았다. 또 슬펐다. 두 눈에 눈 물이 핑 돌며 “아버지, 아버지, 다시 생각을 하셔요. ××신문을 원망하시 지 말고.” 말소리가 울음에 떨려 눈물방울이 장판 위에 뚝뚝 듣는다.
한치각은 벽을 향하고 누웠다가 몸을 홱 돌리며 “뭐야? ××신문이 어째?
이년, 너까지 아비를 원망하니?” 하며 복희의 숙이고 있는 머리 위에 노기 가 가득한 시선을 던졌다.
복희는 대답이 없이 느끼어 운다. 어디서인지 두부 장사의 힘없이 외는 소 리가 고요히 들린다.
94회 처녀 가슴에서
복희는 자기 아버지의 품행이 너무나 명예롭지 못한 까닭에 학교 동무들 사이에도 때때로 면난한 경우를 당하는 일이 있고 가정에서도 자기 부모가 걸핏하면 말다툼을 일으키어 평화한 때가 없이 지내는 것을 항상 마음에 애 닯게 생각하는 중에 자기 아버지의 기사가 각 신문에 실린 기회를 봐서 자 기 아버지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려고 눈물을 흘리며 간청을 하였으나 원래 가 타락한 생활에 마음이 마비된 한치각은 말이 적고 순진한 만류하는 복희 가 피가 맺히는 애원에도 아무 변화하는 빛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계집 아이년이 무얼 안다고 그러느냐?” 하는 자기 아 버지의 불호령을 받고 복희는 안으로 쫓겨 들어왔다. 자기 아버지가 마음을 뉘우쳐서 부드럽게 나오거든 차차 황숙자의 사진까지 알아보고 또 황숙자를 위하여 자기 아버지의 손을 끊도록 하자는 애정이 호령 한마디에 다하여 버 리고 말았다. 복희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책상에 얼굴을 대고 얼마 동안 울었다. 자기 아버지의 개심은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한 편으로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떠돌았다. 자기 아버지의 난봉은 모두 돈에서 나오는 타락이다. 돈이 자기 아버지의 수중에 있을 때까지는 그런 행동이 계속 될 터이니 참 애닯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돈, 돈, 돈을 바라는 사람 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으련마는 자기 집에는 돈 한 가지가 자기 아버 지의 죄악을 기르는 한 거름이 되어 있으니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도 많다 고 생각하였다. 남자, 돈, 그렇게도 굳세고 또 자유스러운 것인가? 여자를 함부로 눌리고 또 돈으로 그 죄악을 파묻게 하는 이 세상이 과연 얼마나 오 래까지 계속될 것인가? 자기 집에 만일 돈이 없었다면 또 어떠한 비극이 일 어났을지는 모르나 그 비극은 결단코 죄악을 세상에 던질 비극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배가 고프고 몸에 부딪히는 혹독한 추위에 떨고 있을 그것뿐 이 아니었을까 차라리 우리 집에 돈이나 없었으면 하는 돈을 원망하는 생각 이 났다. 복희는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이러한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가 다시 한편으로는 황숙자의 그림자가 머릿속에 떠올라 왔다. 학교에서 마지 막 학과를 하던 날 숙자를 만난 뒤에 졸업식을 하는 날에도 숙자는 출석을 아니하여 그 후로는 도무지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 숙자를 자기 아버지 손 에서 떼어 놓으려고 이 생각 저 생각을 다하여 보았으나 별로 명안이 나서 지 아니하여 그대로 두었으나 항상 마음에는 염려를 하고 있었다. 마치 어 린애가 우물가에서 놀고 있는 것 같이 또 그동안에 자기 아버지 손에 걸려 들지나 아니했나 하여 마음을 태우고 있었다. 오늘 자기 아버지의 태도를 보건대 좀처럼 양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으니 자기가 생각하던 최후의 수 단으로 숙자를 구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편지종이와 철필을 꺼내어 책 상 위에 놓았다. 섣불리 자기 아버지에게 간청하는 것보다 직접으로 숙자에 게 경고를 하는 것이 도리어 낫겠다는 생각이 나서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 러나 복희는 철필을 들고 주저하였다. 숙자는 경고를 하려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비추지 아니 할 수는 없고 또 자기 아버지의 말을 쓴다하면 숙자에게 경계를 하리만큼 자기 아버지의 결점을 쓰지 아니하면 안될 것이니 자식이 되어 자기 붓으로 그 아버지의 비평을 쓰는 것이 큰 죄나 짓는 것 같이 생 각이 되어 복희는 손으로 턱을 고이고 한참 동안 생각이 막히어 앉았다. 한 편을 구하면 한편은 쓰러지고 그것이 더구나 자기 아버지가 아닌가. 복희의 붓은 용이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얼마 있다가 복희는 무슨 묘안이나 발견한 듯이 철필를 들고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복희의 오동통한 주먹은 철필을 흔들어 매끈매끈한 편지 종이 위에서 만벌이 같이 부닐고 있다. 세 손가락 에 끼인 철필촉은 좌우로 흔들리며 검은 실 끝을 풀어 놓듯이 흰 종이 위에 글자를 나타낸다. 한 장 또 한 장 복희의 그 편지는 숙자의 운명을 구하려 고 순진한 처녀의 가슴속에서 풀려 나온다.
95회 무서운 의사의 선고
황숙자는 황치삼의 교묘한 수단에 빠져서 한치각에게 순결한 몸을 더럽힌 뒤로는 전에 보던 순진하고 맑은 기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날마다 어두운 빛이 얼굴에 가득하고 근심과 원망에 쌓인 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어머니 되는 오과부는 말할 수 없는 신고를 다해가며 숙자를 길러서 이제는 학교까 지 마치게 된 것이 마음에 든든하고도 남에 없는 큰 보배나 가진 듯이 귀여 운 생각이 더욱 깊어 가는 이때에 숙자가 별안간에 무슨 근심이나 생긴 것 처럼 얼굴에는 화색이 없어지고 며칠 동안은 우중충한 방속에 앉았다 누웠 다 하며 울적하게 지내는 모양을 보고 오과부는 숙자에게 여러 번 물어 보 았다. 그러나 숙자는 몸이 좀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이요 다른 말은 도무지 입을 떼지 아니한다. 단 두 식구가 사는 집안에 더구나 집의 주인이요 또 탐스러운 꽃송이 같이 날마다 사랑스럽게 들여다보고 있는 숙자가 무엇에인 지 웃음을 빼앗기고 수심에 쌓여 있게 되니 집안에는 맑은 빛이 아주 끊어 져 버렸다. 오과부는 마음을 태우며 여러 가지로 위로를 하였다. 자기 경험 으로 보면 젊었을 때에 깊은 겨울이 다 지내고 나뭇잎이 피어나는 따뜻한 봄날에는 해마다 얼마 동안은 공연히 마음이 서글퍼지며 까닭모르는 울음이 나오던 일이 있었지마는 그것은 자기가 홀로 된 마음에 느끼던 일이다. 옛 날 말에도 여편네는 봄철이 슬프고 사나이는 가을이 슬프다는 말도 있으나 요사이 숙자의 모양은 마치 자기가 청춘과부 때에 느끼던 그것 같이도 보였 다. 그러나 아직 어린애 같은 숙자가 그러한 양춘의 깊은 느낌을 알 때도 아닐 터인데 도무지 괴이한 일이라고 오과부는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십여 일을 지나는 동안에 숙자의 몸에는 완연히 병의 흔적이 나 타나게 되었다. 머리가 몹시 아파오고 때때로 아랫배가 땡기며 몸이 무거워 졌다. 숙자는 한치각을 원망하여 순결하던 자기 처녀의 몸에 더러운 흔적이 박힌 것이 한없이 원통하여 마음을 괴롭게 하고 있는 동안에 몸에 어떤 고 장이 생겼나 하고 심상치 며칠 동안은 내버려 두었으나 병 증세는 날마다 심하여 어제 저녁에는 아랫배가 아파서 밤을 반짝 세웠다. 오과부는 별안간 에 놀라서 허둥지둥하며 체증 약을 지어 달이느니 한약을 먹이느니 한참 동 안 법석을 한 다음에 조금 진정이 되었으니 오늘 아침에도 또 심하게 복통 이 일어나서 오과부는 할 수 없이 숙자를 인력거에 태워 가지고 의전병원으 로 가서 처음으로 양의의 치료를 받게 되었다. 내과 진료실로 부인과 진찰 실로 두 군데를 거쳐서 평생에도 처음 되는 수치를 다 당해가며 부인과 의 사에게 받은 진단으로 마치 재판장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 찰나의 죄수 같이 숙자의 정신은 아뜩하게 놀랬다. 숙자의 병은 세상에 부끄럽고 또 가장 더 러운 임독성 ××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 처녀의 파열이다. 여자의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숙자는 학교에서 생 리학 시간에 선생에게 참고로 듣던 그 무서운 병균이 자기 체내를 파먹으며 꿈질거리고 있는 생각을 하니 몸이 썩은 시궁창에 빠진 것 같고 당장이라도 칼이 있으면 병균이 파먹어 들어가는 그 곳의 살점을 척척 베어내고 싶었 다. 오과부는 병원 대합실에서 이 사람의 얼굴을 무의미하게 쳐다보고 있다 가 숙자가 핼쓱한 얼굴로 진찰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급히 숙자의 옆으로 가서 물었다.
“그래 무슨 병이라고 하든? 대단한 병은 아니겠지?”하며 오과부는 마음 을 졸이며 물었다. 그러나 숙자는 고개를 숙인 채로 두 눈에서는 더운 눈물 이 쏟아지며 아무 대답이 없다. 오과부는 더욱 마음이 타서 또 재우쳐 “왜 우니? 병을 못 고치겠다느냐? 왜 그래? 그래 대관절 무슨 병이라디?
배가 아픈 병이니 체증이 아니면 횟배겠지 무어란 말이냐?”
오과부는 숙자의 태도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단순히 배앓이가 아니면 무슨 병인가? 대답이 없이 벽을 향하여 울고만 있는 숙자의 어깨에 손을 대어 흔 들며
“글쎄, 무슨 병이라더냐? 말을 좀 하려무나. 참 이상스러운 애도 있다.
젊은 애들이 병이 좀 났기로 무얼 울고 있단 말이냐?” 하며 오과부는 숙자 를 위로하는 듯이 물었다. 숙자는 차마 그 무서운 더러운 병이 자기 몸에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96회 깊은 봄소식에 슬픈 사랑
숙자는 병원에서 의사에게 조롱 비스름한 “아직 새카맣게 젊은 학생이 어 디서 그런 고약한 병을 받았어?” 하는 소리를 듣고 얼굴에 모닥불을 끼얹 는 것 같은 부끄러움을 당하여 그 곳에서 당장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났 다. 의사의 말은 속히 수술을 하지 아니하면 나중에 생산을 하지 못하는 것 은 둘째요 오래두면 생명까지 위태한 병이라고 주의를 하였다. 그러나 숙자 는 고통이 없이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났다. 자기 집에 병원에 들 어가서 치료를 할 금전의 저축도 없으려니와 아직 시집도 아니 간 숫처녀가 그런 창피한 병을 가지고 이곳저곳으로 치료를 하러 다니는 것이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워서 차라리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은 생각도 났다. 그러나 때 때로 아랫배가 치밀어 올라오며 진땀이 바작바작 나도록 아파오는 데는 그 대로 참을 수는 없었다. 당한 치욕도 바로 말할 수가 없었는데 더구나 그 더러운 병균을 옮아온 것은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뱃속에 적 같은 병이 생겨서 그렇게 때때로 복통이 났다고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하여 자기 어머니를 속였으나 숙자의 마음에는 비록 자기가 만들어지은 죄는 아니라 할지라도 자기 하나만 믿고 사는 그 어머니를 속이는 것이 큰 죄악같이 생 각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불상스러운 내막을 말하여 자기 어머니까지 놀 라게 하느니보다 자기 혼자만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이 도리어 낫겠다는 생 각도 있었다. 요사이 며칠 동안은 일기가 아주 풀어서 푸근한 바람이 마당 가로 떠돌며 담 밑에 수북하던 눈덩이도 어느덧이 반이나 넘어 녹았다. 봄 빛은 다시 때를 찾아서 숙자의 집 말 끝에 따뜻한 햇살을 던졌다. 숙자는 마음을 괴롭게 지내다가 다시 몸에까지 몹쓸 병이 덤비어 조석도 아니 먹고 힘없는 몸을 이불 속에 던지고 봄빛을 등진 컴컴한 방속에 드러누웠다. 오 과부는 숙자의 병이 근심이 되어 손에 일도 잡히지 않고 마루 끝에 걸터앉 아서 하염없이 먼 데를 바라보고 앉았다가
“얘, 숙자야, 인제 좀 아픈 것이 진정되니? 몸이 조금 웬만하거든 이리 좀 나오려무나. 오늘은 아주 늦은 봄날 같이 따뜻하다. 기동을 좀 하여 보 려무나” 하며 오과부는 숙자가 죽치고 들어만 누운 것이 애석해서 이렇게 불러냈다. 충충한 방 속에서 숙자의 가벼운 한숨 소리가 들리더니
“어머니, 거기서 무얼 하시오? 바깥이 그렇게 따뜻하오?” 하며 숙자는 힘없는 소리로 묻는다.
“따뜻하고 말고. 아주 꽃 필때 같다. 좀 나와 봐라.”
“어머니 지금 2월 그믐이지? 음력으로는 참 오래 전에 꽃 필 때가 됐어.
그러나 꽃이 피면 뭘 해? 어머니 난 요새 웬일인지 죽고만 싶어.” 숙자는 말끝이 힘없이 사라지며 긴 한숨 소리가 미닫이 밖에 들린다.
오과부는 무서운 참언이나 들은 것처럼 마음이 선뜻해지며
“원 도섭스런 소리도 한다. 계집애년이 그런 방정맞은 소리를 왜 한단 말 이냐? 병석에 있으면서.” 오과부는 숙자의 말문을 콕 쥐어 질러버리듯이 막아버렸다.
“세상이 다 귀찮으니까 말이지” 하며 숙자는 방 속에서 슬픈 어조로 수 수께끼 같은 말을 물었다.
“귀찮다니? 무엇이 귀찮단 말이냐? 이제 학교도 졸업장을 맡았으니 고만 이고, 참한 대로 시집이나 가면 좀 좋으냐? 무슨 걱정이 있니? 앞에 남은 것은 이제 기쁜일밖에 없다. 그런데 너를 내놓고 내가 혼자 무슨 낙으로 산 단 말이냐? 사위를 얻어도 한 집에서 살 시위를 얻어야지. 왜, 과부 어미를 내버리고 너 혼자 시집을 가고 싶으냐?”
“아니 나는 시집가기도 싫어. 세상이 그저 귀찮은 생각만 나서.” 숙자의 눈에는 미지근한 눈물이 어리어 있다.
“네가 아마 봄을 타나보다. 젊었을 때에는 봄이 되면 사지가 노곤하고 공 연히 서글픈 생각이 나느니라.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아무 생각도 말고 약이나 잘 먹고 얼른 병이나 나왔으면 좋겠다.” 오과부는 숙자의 머릿속에 엉클어진 번민도 모른다. 또 숙자의 체내를 각각으로 더럽히며 파먹어 들어 가는 병균도 모른다. 다만 지극한 애정으로 숙자를 위로할 뿐이다.
숙자와 오과부는 봄소식을 느끼며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대문 밖에서 별안간에 “편지 받으우” 하는 소리가 들렸다.
97회 아, 정다운 편지
오과부는 편지 받으라는 소리에 놀라 대문간으로 곧 나아가보니 하얀 좁드 란 봉투가 대문 안 흙바닥에 떨어져 있다. 글자를 알아보는 사람 같으면 우 선 어디서 온 것인지 먼저 피봉을 보았을 것이나 겨우 언 문자밖에 모르는 오과부는 다만 봉투 머리에 붉은 우표가 붙었으니 체 전부가 떨어뜨린 편지 인 줄만 알 뿐이요 그 밖에 더는 알아볼 지식이 없었다. 오과부는 편지를 손에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 집에는 일년을 지내야 별로 편지 한 장 들 어오지 않는 집이라 글자를 모르는 오과부에게는 한편으로는 가벼운 역류와 또 한편으로는 이상한 호기심이 떠돌았다. 이불 속에 누웠던 숙자는 손을 내밀며
“어디서 편지가 왔소? 누가 내게 편지 할 사람은 없는데? 이리 주시오” 하며 오과부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서 봉투에 전면을 보니 분명한 자기의 이 름이 있다. 친필로 가늘게 쓴 획이 분명히 여자의 필적인데 어디서인지 많 이 보던 글씨 같아 보이어 얼른 봉투를 뒤집어서 후면을 보았다. 후면에는 ‘××여학교 동창생이 올림’ 이라고 있을 뿐이요 발신인의 주소도 없고 성명도 없다. 이따금 달짝지근한 문자를 늘어놓은 소위 연애편지가 들어와 서 자기 어머니 앞에서 공연히 얼굴을 붉히는 일이 가끔 있었으나 이번 편 지는 분명한 여자의 필적이요 또 동창생이라고 쓰여 있으나 또 어느 전문학 교 남학생이 희롱하는 편지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며 봉투의 웃머리를 뜯었 다. 편지는 참깨 같은 잔글자로 수면지에 쓴 것이 다섯 장이나 되었다. 긴 사연을 읽어보기 전에 숙자는 마음이 궁금하여 다시 맨 끝장을 펴서 발신인 의 성명을 먼저 살펴보았으나 역시 피봉과 같이 동창생이라고만 써 있을 뿐 이다. 그러나 편지에 나타난 글자는 분명히 눈에 익은 글자다. 숙자는 미닫 이 베개를 옮겨 놓고 밝은 빛을 향하여 편지를 읽는다.
나의 경애하는 숙자 아우님.
내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이 편지를 올리는 것을 용서하시오.
나는 아우님의 감정을 염려하여 지금 철필촉이 춤을 추며 나의 이름의 먹 흔적을 내려 하는 붓대를 억제하였습니다. 나의 이름을 감추지 아니하면 아 니 될 나의 쓰린 가슴을 미루어 생각하시고 부디 용서하여 주시오. 그러나 만일 나의 글씨를 보시고 이 편지의 주인을 짐작하시게 된다하면 나는 도리 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나의 경애하는 아우님.
우리가 한 교실에서 4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내며 같이 뛰고 같이 웃고 또 같이 배우던 정든 여러분이 졸업장을 손에 들고 교문을 나갈 때에 나는 기 쁨보다 슬픔이 많았습니다. 더욱이 졸업식장에서 아우님의 반가운 얼굴이 보이지 아니하여 나는 아우님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 같이 마음에 섭섭하고 또 슬펐습니다.
나의 경애하는 숙자 아우님.
나는 스스로 부끄러운 얼굴을 내 손으로 가리고 한 마디 충고를 아우님께 올립니다. 우리는 장차 가정의 사람이 될 희망 많고도 또 위험이 많은 두 길에 있는 것을 깊이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명하신 아우님이 어련하 실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앞에 닥친 결혼 문제는 참으로 신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학과를 마치던 수신 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여자의 정조에 대한 위협기가 왔습니다. 결혼을 앞두 고 춤추는 허영의 꾀임. 코 앞에 아른거리는 거짓 연애의 달콤한 내음새가 우리들을 꾀이려고 웃고 속살거리며 있습니다. 참 우리는 위험한 시기에 당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이 시기를 경계하여야 될 것은 물론이나 더욱 이 아버님을 잃으신 고독하신 아우님을 위하여 나는 주제넘은 한 말씀을 드 립니다. 나는 날마다 집안에서 가정의 비극을 눈물로 보고 있습니다. 결혼 의 중요 요소는 재산이 아니겠지요? 나는 재산이 너무나 가정을 어지럽게 하는 실례를 보고 있습니다.
나의 경애하는 아우님.
내가 이 편지를 올리는 직접 동기는 어떠한 의외의 사실을 보고 놀랐기 때 문입니다. 아우님의 사진을 뜻밖의 처소에서 발견하고 나는 몹시 놀랐습니 다. 설마 아우님의 결혼을 의미하는 사진은 아니겠지요? 나는 이 간단한 사 실 외에는 더 쓸 수는 없습니다.
나의 경애하는 황숙자 아우님께 동창생이 올림.
이라고 써 있었다.
98회 때는 이미 늦었다
숙자는 참깨 같이 잘게 쓴 편지를 두어 번이나 되풀이하여 일었다. 편지 끝에 이름은 없으나 글자에 나타난 특색이 점점 명료하게 드러나서 처음부 터 눈새 익은 글씨는 과연 동창생인 한복희의 글씨인 것을 짐작하게 되었 다. 복희와 특별한 교제는 없었지마는 한 교실에서 더구나 가까운 자리에 서 4년 동안을 같이 지내게 되어 어느덧 정이 들었었고 또 복희는 다른 학 생들 같이 나대지를 아니하는 까닭에 숙자와는 성격 상으로 공명되는 점이 많았다. 숙자는 편지를 본 다음에 무서운 선고나 받은 것 같이 마음이 떨리 었다. 자기가 마음 속에 깊이 감추고 고민으로 지내는 그 비밀을 벌써 짐작 하고 한 편지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서 마음이 울렁거렸다.
한참봉? 한복희? 두 사람의 집이 똑같은 사직골이 아닌가? 숙자의 머리에 는 이러한 의심이 떠돌며 다시 복희의 모습과 한치각의 모습을 비교하여 생 각하니 악마 같이 덤비던 한치각과 비스듬하게도 생각이 난다. 그러면 이때 까지 한 학교에서 이마를 맞대고 공부를 하던 복희가 그 무시시한 색마의 딸이었던가? 편지 사연에는 재산으로 해서 집안의 어지러운 실례를 눈으로 보고 있다는 그 사실이 자기 집을 가리킨게 아닌가? 한치각을 말한 것이 아 닌가? 아, 분명히 한치각의 딸이다, 복희는 자기의 처녀 몸을 더럽히고 몹 쓸 병균까지 옮겨 준 그 악마의 딸이다, 이러한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오며 숙자의 두 손은 성북동 빈 정자의 안에서 떨리듯이 또 떨리어 온다. 두 눈 에는 원망의 빛이 번뜩 거린다. 한치각은 나의 일생에 참혹한 파멸을 준 원 수이다. 이 편지는 그 원수의 피를 이은 그 딸의 편지이다 하는 분노가 일 시에 가슴에 치밀어 올라왔다. 숙자는 손에 들었던 복희의 편지를 발기발기 찢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며 복희가 무슨 까닭으로 전혀 아니하던 편지를 일부러 자기에게 할 필요가 있나 이것이 흥분의 초점 을 누르며 떠올라 오는 큰 질문이었다. 만일 한치각이가 자기를 더럽힌 사 실을 일렀다 하면 자기의 아버지가 비밀이 행한 죄악을 복희가 편지까지 하 여 내게 경고를 할 필요가 없지 아니한가 아무리 생각하여도 숙자는 복희의 편지가 던진 의문을 해독할 수 없었다. 복희 편지에 자기의 사진을 의외의 처소에서 발견하였다고 또 그것이 이 편지를 쓰게 된 동기라 하니 자기 사 진을 한치각에게 준 일은 없는데 참 괴이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오과부에게 “어머니 작년 가을에 박인 독사진은 다 그대로 집에 있지?” 하며 물었 다.
오과부는 정신없이 숙자의 편지 보던 짓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건 왜 묻니? 한 장은 그 언제이던가, 치삼 아저씨가 혼인 준비한다고 가져가고 두 장은 그대로 있다.” 숙자는 황치삼이가 자기의 사진을 가져 간 사실을 전연히 모르고 있다가 오과부의 말에 깜짝 놀랐다. 동시에 그 사 진이 한치각의 손에 들어간 경로를 짐작하게 되었다. 숙자의 머리에 서리었 던 의문은 차차 풀리게 되었다. 그 동시에 자기의 사진을 함부로 내돌린 자 기의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왜 남의 독사진을 그렇게 함부로 내주었소? 그 이가 무엇이 그렇게 얌전 한 이라고? 어머니도 참 딱하시오.” 가벼운 원망의 눈을 오과부에게 던졌 다.
“왜? 그 편지가 사진 때문에 온 것이냐? 사진 때문에 무슨 일이 생겼 니?” 오과부는 다시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편지를 들여다보았다. 숙자는 모든 비밀을 가슴에 묻고 태연한 낯으로
“아니 이 편지는 그런 게 아니지만은 별안간에 사진 생각이 나서 그저 물 어 봤지요. 남아있는 두 장이랑 다른 데 주지 마시오.”
“그래라, 잘 간수하여 두마. 그런데 그 편지는 어디서 왔니?”
“학교 동무한테서 왔어. 졸업을 하고 다 각각 헤어지게 되었다고 섭섭하 다는 인사편지라오” 하며 숙자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기 어머니 앞에 는 모든 비밀을 감추었으나 머릿속에 얼크러진 의문은 복희의 편지를 또다 시 읽게 하였다. 복희의 편지는 전문을 통하여 따뜻한 동정의 빛이 가득하 였다. 자기를 파멸케 한 원수의 딸이지만은 그 편지는 성의의 충고로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복희의 편지가 만일 자기 아버지를 경계하라는 뜻으로 보낸 것이라며는 때는 벌써 늦었다고 생각하며 마음이 다시 슬펐다.
99회 반가운 눈물 뿐
며칠 동안 따뜻한 봄빛이 쏘이더니 좁은 골목에 쌓였던 눈더미와 개천에 엉기어 불었던 얼음장이 다 녹아버리고 양지를 향하여 서 있는 버드나무는 벌써 싹눈이 봉긋봉긋하게 속아올랐다. 깊은 겨울 내 오랫동안 감금을 당하 고 있던 서울 사람들은 따뜻한 바람으로 불러내는 봄빛을 따라서 큰 길 거 리에는 벌써 이유없이 거니는 사람들 떼가 물결같이 쏟아져 나왔다. ××여 학교 졸업생들은 학교를 하직하는 마지막 모임을 겸하여 동대문 밖 영도사 에서 사은회를 열게 되었다. 여학교 사은회 이니만큼 장소의 선택이 매우 문제가 되었으나 봄빛이 이미 두터웠으니 야외의 산보를 겸하여 조용한 절 로 모이는 것이 좋다고 결정이 되어 졸업생과 선생들은 오정을 표준으로 영 도사로 모이게 되었다. 복희는 자기 집에서 나다니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지 만은 이유 없이 결석하면 시비를 듣는다고 핑계하고 복희도 참가하게 되었 다. 복희는 사은회보다 자기가 편지를 하여 경고를 한 숙자에게서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 회답이 없기 때문에 오늘은 외출할 기회를 타서 숙자를 찾아보 고자 하는 것이 도리어 긴한 용무이었다. 집에는 출석 시간을 에누리하여 열한 시까지라고 속이어 아침을 재촉하여 먹고 집을 나섰다. 숙자는 복희에 게 편지를 받고 무어라고 답장을 하려고 생각도 해 보았으나 복희가 자기 이름도 쓰지 아니하고 비밀 편지를 한 모양인데 불쑥 답장을 그 집에 들이 미는 것이 위험하게 생각이 되어 그대로 내버려 둔 것이다. 숙자는 오늘도 아침에 한참 동안 아랫배가 아파서 신고를 하다가 그대로 이불 속에 누워 있다. 복희는 수첩에 적은 동창생의 번지에서 숙자의 집 번지를 찾아 대문 앞에서 어른거리다 안으로 들어왔다. 복희는 서먹서먹한 발길을 들여 놓으 며 “숙자! 숙자! 집에 있어?” 하며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시커멓게 절은 미닫이를 닫고 우중충한 방안에 누웠던 숙자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는데 정신이 번쩍 나서 “누구요? 어머니 밖에 누구왔소. 얼 른 나가 보시오” 하며 오과부를 재촉하였다. 오과부는 마루에 나아갔다.
“숙자 있어요? 나는 학교 동무예요” 하며 복희는 오과부를 쳐다본다. 방 안에 누웠던 숙자는 몸을 일으키어 미닫이를 열며 병색이 깊은 핼쓱한 얼굴 을 내놓았다.
“아이고, 나는 누구라고. 복희군. 참 반가워. 어떻게 우리 집을 찾았 어?” 하며 숙자는 한치각의 일과 또 복희의 편지를 보며 생각하던 모든 번 뇌는 일시에 사라지고 다만 눈물이 핑 도는 반가움만 가슴에 가득하였다.
복희의 얼굴은 두 뺨이 불그레하게 흥분이 되어 반가운 빛을 나타냈다.
“그런데 졸업식 날에도 아니 오길래 앓는 줄은 알았지마는 얼굴이 저렇게 못했어? 어디가 아파서 그러니? 복희는 놀랜 듯이 숙자의 얼굴을 쳐다보았 다.
“얼른 방으로 들어와. 응, 복희야 참 반가워. 나는 배가 좀 아파서 그래.
옮는 병은 아니니 염려 말어. 방에 들어오기 싫거든 그럼 내가 마루로 나가 지” 하며 숙자는 일어서려 하다가 아랫배가 켕기어 다시 앉는다. 복희는 권하는 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복희와 숙자가 얼굴을 마주대고 앉게 되니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다시 이상한 서먹서먹한 기분이 떠돈다. 복희의 머릿 속에는 자기가 부친 편지의 글씨를 알아보았나 하는 생각으로 있나 하는 것 이 궁금하였다. 또 숙자는 전에 그런 특별한 교제를 아니하던 복희가 편지 를 하고 일부러 찾아까지 오니 고맙기는 하거니와 그러면서 또 무슨 새 사 실이 있지 아니한가 하는 의심도 있었다. 그러나 깃발 부러진 듯한 고독한 자기를 일부러 찾아 주는 것이 몹시 고마웠다.
“오늘은 어떻게 나왔어?” 숙자는 복희의 손길을 힘 있게 쥐며 반가운 눈 물이 두 눈에 어리었다.
100회 진정으로 묻는 말
오과부가 실과를 사러 나간 동안에 숙자와 복희는 마주 앉아서 학교에서 졸업식을 하던 때 광경과 선생들에 대한 논평이 한참동안 계속되더니 그 이 야기에도 어느덧 흥미가 풀어졌다. 복희는 숙자의 입에서 이때나 편지의 이 야기가 나올까 또 숙자는 복희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으면 하는 생각으로 얼마 동안을 서로 눈치만 살피며 앉았으나 좀처럼 복희의 입에서는 편지를 자기가 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숙자는 기다리다 못해서 먼저 입을 열 었다.
“내가 잘못 알았는지는 모르나, 아니 잘못 보았는지는 모르나, 저…… 저…… 네게 물어볼 것이 있어.”
숙자는 말을 하기가 거북하고도 또 부끄러워서 주저하였다. 복희는 숙자의 말눈치와 얼굴빛을 보고 즉각적으로 자기가 한 편지의 이야기가 이제야 나 오는구나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숙자의 입에서 분명히 말이 다 나오기까 지는 그대로 모르는 체를 하려고 여전히
“우엇이야? 무엇이 이상한 일이 있니?” 하며 복희는 숙자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왜 너도 생각이 날 터인데 속이지 말고 먼저 네가 말을 좀 해. 응?” 하 며 숙자는 네가 한 편지가 아니냐 하는 암시를 주었다. 복희에게는 숙자의 이 말이 정면으로 자기의 대답을 얻자는 말인 줄 알아들었으나 그래도 모르 는 체하고
“무엇 말이야? 나는 아니 나는데‘ 하며 복희는 미소를 띠었다.
“그럼 내가 잘못 알았나? 그럴 리가 없는데. 얘, 너무 속이지 말고 속이 시원하게 말을 좀 해라. 내가 요새 걱정이 많아서 이렇게 병이 다 났단다.
너 접때 내게 편지했지? 내 사진은 어디서 보았니?”
숙자는 참다 못하여 정면으로 물었다. 복희는 구태여 끝까지 속이자는 것 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와 상관되는 일이기 까닭에 편지에는 이름을 나타내 지 아니하였으나 정면으로 묻는 데야 바른 대답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응. 편지 말이냐? 그래. 그 편지는 내 했어. 내가 했다. 편지에 사정이 잘 안 폈지? 그러나 나는 마음으로 퍽 걱정이 돼서 그런 편지를 했었다. 네 사진이 어디로 굴러왔는지 우리 아버지 조끼 주머니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
복희는 사실대로 말하였다. 숙자도 이미 짐작은 한 일이지만은 복희의 말 에 다시 섬뜩한 놀람을 느끼며
“무어? 내 사진이 너의 아버지 주머니에 있었어?” 하며 복희 말을 되풀 이하며 물었다.
“그래 내가 우리 아버지의 벗어놓은 옷을 개키다가 발견하곤 깜짝 놀랐 다. 그래 그 이튿날 학교 운동장에서 네게 사진 한 장 달라고 말하지 않았 니? 바로 그 전날이야. 나는 뜻밖에 네 사진을 보고 그래도 또 같은 사람일 것이나 아닌가 하고 물어보았었다.”
복희의 말을 들으며 숙자는 손가락을 꼽아 무엇을 헤고 있다. 숙자는 한치 각에게 욕을 당하던 날짜와 복희가 사진을 발견한 날짜를 꼽아 본 것이다.
복희의 편지가 좀 더 일찍이 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나서 그렇게 날짜를 헤 어 본 것이다. 사진을 발견했다던 날짜는 역시 한치각에게 욕을 당한 며칠 수이었다. 복희는 별안간에 숙자가 말이 없이 묵묵히 앉았는 것이 이상스럽 게 보였다.
“대관절 네 사진이 어째서 우리 아버지 손에 들어왔니?”
“나도 웬일인지 모르겠다. 언제인가 우리 일갓집에서 한 장을 가져가더니 아마 그것이 너희 아버지에게로 굴러들어갔나 보다. 나는 너희 아버지와 얼 굴도 모른다” 하며 숙자는 얼굴이 붉어졌다. 복희의 시선이 자기의 비밀을 들추어내려는 듯이 정면으로 쏘이는 것이 마음에 두려웠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 아버지를 만날 까닭도 없으려니와 네 독사진을 보 낼 리도 없어서 웬일인가 하고 놀랬었다. 우리 아버지는 아주 큰 난봉이란 다. 내 서모가 지금 셋이나 되고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날마다 기생집으로 만 다닌단다. 그래서 나는 네 사진을 보고 누가 혼인 중매나드나 하고 놀랐 었다. 우리는 학교를 졸업한 신여성인데 아무쪼록 시집을 골라가야 아니하 니? 우리 집은 재산은 많단다. 그렇지만 돈만 있으면 무얼하니? 우리 아버 지는 돈으로 계집을 사는 이란다. 그래서 혹시 네가 속지나 아니할까 염려 하여 그런 편지를 한 것이다. 너 우리 아버지는 정말 한 번도 못 보았지?” 복희가 진정을 다하여 이렇게 묻는 말에 숙자는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옳 을지 가슴이 답답하였다.
101회 말 못하는 붕우
복희는 숙자와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여러 가지로 의심을 생 기었다. 숙자가 자기 아버니를 한번도 못 보았다는 말이 정말이겠지만은 말 하는 눈치가 웬일인지 이상스럽게 들리기도 하고, 또 사진이 자기 아버지에 게로 굴러들어온 경로를 변명하는 숙자의 말도 역시 모호하게 들리었다. 일 갓집에 보낸 사진이 그렇게 굴러들어온 것이라고는 말하나 숙자의 변명이 어디인지 정말 같이는 아니 들리는 점도 있었다. 그래서 복희는 마음에 부 쩍 의심이 생기며 숙자의 얼굴을 다시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숙자는 복희의 시선이 너무나 자주 자기의 얼굴을 엿보는 것이 마음에 두려워서
“왜 그렇게 남의 얼굴을 유심히 보니? 내 얼굴이 아주 변했지? 아마” 하 며 숙자는 자기의 얼굴을 너무 보지 말라는 것처럼 경고 비스름하게 말하였 다.
“아니야, 그동안에 퍽 얼굴이 못해보여서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디가 아 파서 그러니? 벌써 여러 날이 됐는데. 의사의 진찰은 해 봤니? 얘, 요새에 마마도 많고 또, 못된 병들이 돌아다닌다더라. 이제 얼마 안되면 꽃도 필터 인데 얼른 일어나야지. 꽃이 피거든 우리 동물원에나 한번가자.” 복희는 숙자를 위로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숙자는 자기 병을 추구하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아마 뱃속에 ‘적’ 이 생겼나봐. 때때로 아랫배가 캥겨서 일어날 수가 없어.”
얼터당토 아니한 이런 거짓말을 꾸며대었으나, 마음에는 부끄럽기도 하려 니와, 한편으로는 너희 아버지가 흉악한 병을 옮겨주었단다, 하는 원망도 일어났다.
“적이라는 병은 옛날에 한방 의사가 하던 말이란다. 학교에서도 생리학 선생님이 말씀하지 않든? 여자의 병은 특별히 주의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고. 자궁에 병이 있어도 배가 아프게 된다고. 그런 것을 한방 의사들은 다 회적이 농간하는 병이라고 했어. 해서 함부로 약을 쓰기 때문에 나중에는 큰 봉변을 하는 일이 많다고 그러시지 않든. 얘, 너도 얼른 대학병원 같은 데 가서 진찰을 해 보아라. 나중에 딴 병이 생기면 큰일 난다.” 복희는 무심코 이렇게 한 이야기가 숙자의 가슴에 쓰린 고통을 주고, 얼굴 에는 화끈하는 부끄러움을 끼얹었다.
“나는 의사도 보기가 싫다. 요새 같아서는 죽고 싶은 생각만 나서 세상이 다 귀찮아 못견디겠어” 하며 숙자는 수심이 쏟아져 나오는 한숨을 쉰다.
복희는 가벼운 웃음을 던지며 “너 무슨 비밀 있구나? 누구하고 연애를 하 니? 하하.” 복희는 손을 들어 가볍게 숙자의 어깨를 치며 웃는다.
“아니란다. 남의 속도 모르고. 그래. 연애가 다 뭐냐. 난 그런 시체일은 모른다.”
“그럼 무슨 걱정이 있어 그러니? 결혼 문제가 일어났니?” 복희는 실없는 말을 하면서 숙자의 태도를 살피고 있다. 숙자의 얼굴은 무엇인지 깊은 근 심에 쌓여있는 것 같아 보여서 자기 아버지와 숙자를 연결하여 그런 면에 어떠한 비밀이 엉켜있지나 아니한가 하는 의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아니한 다.
“결혼이 다 무엇이냐. 나는 시집갈 생각이 없다. 시집을 가면 무얼 하니.
나 같은 사람이” 하며 숙자의 말소리는 힘없이 커진다.
복희는 숙자의 태도가 비판을 나타낼수록 의심이 깊어가며
“무슨 걱정이 있어 그러니? 부모에게는 못할 말이 있어도 동무에게는 할 수가 있단다. 이야기를 좀 하려무나. 우리가 같이 4년 동안이나 지내지 아 니했니. 나는 여러 동무를 떠나게 된 것이 참 섭섭하더라. 우리들이 각각 사방으로 흩어져서 시집을 가게 되면 다시 만나게 될 기회가 또 있을는지 누가 아니. 속말을 좀 하려무나. 내가 오늘은 너의 소식이 궁금해서 일부러 찾아왔다” 하며 복희는 정성껏 물었다.
복희의 생각에는 그동안 자기 아버지의 세상을 더럽히는 색마의 많은 독소 가 이미 숙자의 몸에까지 덤비지나 아니하였나 하는 의심이 마음을 충동케 하여 이와 같이 숙자의 비밀을 물었다. 숙자는 복희의 친절한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순간에 자기의 품고 있는 모든 고민을 그대로 토설할 생각이 치 밀었다. 그러나 그 딸 앞에서 차마 그의 아버지에게 몸을 더럽히었다는 말 을 할 용기는 없었다. 숙자는 떨리는 손길로 복희의 손길을 덮고 눈물이 두 눈에서 펑펑 쏟아졌다. 이때 오과부는 실과 목판을 들고 문을 열었다.
102회 유치장에도 봄빛
××경찰서 유치장에서 열흘 밤이나 지난 강진사와 리민영은 좀처럼 풀려 나갈 가망이 없었다. 오늘도 강진사는 지하실에서 리민영은 형사실 뒷방에 서 엄혹한 취조를 받았다. 강진사는 집에서 사식을 들여보낼 형세가 못되어 대팻밥에 싼 일본 무짠지 두 쪽이 박혀있는 고두밥을 아침저녁으로 얻어먹 고 날마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씩 가슴이 써늘한 취조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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