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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윤동주 트루게네프의 언덕

by 워낙3 2022.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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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게네프의 언덕

나는 고개길을 넘고 있었다…… 그 때 세 소년(少年)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 짝 등(等) 폐물(廢物)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充血)된 눈, 색(色)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 너들한 남루(襤褸),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少年)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惻隱)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時計), 손수건,……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勇氣)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다정(多情)스레 이야기나 하리라하고 `얘들아' 불러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充血)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 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상기 저작물은 저작권의 소멸 등을 이유로 저작권 보호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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