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
나도향
나는 그믐날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날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이 동시에 가슴이 저리도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 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 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女王)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 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 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 등에 정든 임 그리워 잠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 잡은 무 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 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들은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 는 청상(靑孀)과 같은 달이다. 내 눈에는 초생달 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은 치어다 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 듯하지마는, 그믐달은 공 중에서 번듯하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푸른빛이 있어 보인다. 내가 한(恨) 있는 사람이 되 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 는 사람만 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 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情)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 주 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준다.내가 만일 여 자로 태어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출전 : <조선문단>(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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